어메니티 과학실험이 있어 행복한 퇴직 후 생활

어메니티과학교육센터장 김옥자

2019 대한민국과학교사큰모임 발표자료입니다. 다른 곳에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Ⅰ. 어메니티 과학실험을 낳기까지

사람은 주변 공기의 힘을 빌려 빨대로 주스를 빨아 먹고, 얼음이 물 위에 뜬다는 성질로 유지되는 자연 생태계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만물이 핵과 전자로 이루어졌기에 거부할 수 없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아, 인간과 사물, 사물과 사물 간의 소통이 갈수록 원활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언젠가는 ‘호모 데우스(신이 된 인간)’ 시대가 올 것이라는 가능성 앞에 당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정서는 어떤가? 빨대로 주스를 먹는 건 빨대니깐 당연한 것이고, 얼음은 원래부터 물 위에 둥실둥실 뜨는 본성이 있으므로 시원한 화채를 만들어 먹을 수 있고, 전기나 로봇은 전문가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만들어져 나와는 무관하다 여기지 않는가? 과학은 재미없고 어려우며 골치 아픈 것이라며, 과학기술을 이해하기도 전에 과학기술의 산물에 젖어들고 있지 않은가? 어느 누가 주스를 마시면서 공기를 생각하고 폭염을 느끼며 물의 본성을, 인터넷을 즐기며 만물은 원자로, 원자는 핵과 전자로 이루어졌으며 그 전자는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라는 걸 생각하겠는가?

하지만 지나간 1, 2, 3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그저 앞선 과학 기술자들이 만들어 낸 기술의 산물에 젖어들기만 하여도 윤택하고 편리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생활에 별반 불편함이 없었다. 자동차의 구조를 모르고서 운전을 하여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왜냐면 모든 걸 제어하는 게 인간이었으니깐. 과학자도 인간이고. 인간이 하는 일은 인간인 나도 마음만 먹으면 해결할 수 있으니깐. 그러나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다르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지나간 산업혁명의 시대처럼 지나간 시대를 명명한 것이 아니다. 다가오는 시대를, 겪어 보지 못한 시대를 명명하는 것이다. 4차 산업 혁명의 시대는 앞 선 시대처럼 인간이 제어하는 게 아니다. 기계가 제어한다. 어느 누가 기계가 입력된 데이터를 재조직하여 뱉어내는 정보력을 따라 잡을 수가 있겠는가?

이런 시대의 주역이 될 우리 학생들의 교육현장은 어떤가? 여전히 반복되는 입시위주의 주입식 교육에 갇혀있다. 최근에는 미래의 동력이 될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코딩이란 기법으로만 가르치려 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뭔가? 빅 데이터의 결과물이다. 인간 세상으로 옮겨 놓으면 집단지성이라 할 수 있다. AI와 함께 살아갈 아이들에게 암기된 지식의 양으로 줄을 세웠어야 되겠는가? 누가 컴퓨터의 연산 속도나 정보량 또는 학습 속도를 따라갈 수 있겠는가? 영어 한 마디 하지 못하는 필자도 이제 스마트 폰만 쥐면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다. 어려운 수학 문제도 컴퓨터가 척척 풀어준다. 명화도 그려주고 명곡도 작곡해 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지금의 교육이 어떠해야 할지의 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자연의 운용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빅터 샤우버거는 “인류가 파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분석적이고 경쟁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종합적이고 조화로운 세계관을 추구해야만 한다.’고 말하였다. 어느 노벨상 수상 과학자는 “자연은 더 이상 명상하지 않는 과학자에겐 그 어떤 정보도 주지 않는다.”라고 말하였다. 다가오는 4차 산업 혁명의 시대는 과학기술적 소양보다 인문학적 소양을 더 필요로 하는 시대이다. 인간이 지성을 넘어 감성으로, 더 나아가 영성의 지수가 높아질수록 4차 산업 혁명의 시대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삶에 대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난 40년간 필자는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학비를 벌기 위한 과외를 출발로 친구 집에 놀러가서도 친구 동생을 가르쳤고, 농활을 가도 난 그 동네 아이들을 모아 놓고 수학을 가르쳤다. 가르치는 것이 그만큼 재미있었다. 순위교사를 그쳐 정식으로 발령을 받기 전까지는 고등공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정식 교사가 되었을 땐 누구보다 잘 가르칠 자신이 있었고 실제로 잘 가르쳤다고 자부한다. 늘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까? 하는 가르치는 방법(How)에 대한 고민을 안고 다녔다. 하지만 내가 가르치는 것이 무엇(What)이며 왜(Why) 가르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 교사는 그저 잘 가르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무엇이 “잘”인지, 무엇이 “가르침”인지에 대한 고민 자체가 없었다.

1989년 미국 위스콘신 대학 교사연수 SOS(Science On Saturday)에서, 참석한 교사 모두에게 약간의 마약(정확한 이름은 생각안남. 하얀 가루였음)을 나눠주고 시음해 보라고 할 때, 필자는 이 때 처음으로 ‘마약(What)을 왜(Why)’라는 의문을 떠 올려 보았다.

1년간의 미국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청각장애 학교에 지원하였다. 당시 나는 세 가지 신념을 외우듯 생활의 지표로 삼고 있었다. 하나는 생활 지도에 임할 때, ‘진실로 이 아이를 사랑하면 이 아이의 비행을 고칠 수 있다’였고, 둘은 교과 지도에 임할 때, ‘내가 이해한 내용은 남을 이해시킬 수 있다.’였으며, 마지막 하나는 이 둘의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자세로, ‘선 인정! 후 주장!’이었다.

이런 신념으로, 고등학교 2학년 청각장애 학생 4명의 ‘언어지도’ 수업을 하였다. 나는 창문을 열어 놓고 “열다”, 닫아 놓고 “닫다”를 가르쳤다. 일주일에 3시간(45분 수업)씩 한 달을 가르쳤는데 여전히 한 학생이 ‘열다’와 ‘닫다’를 알지 못하였다. 당시 무엇이든 다 잘 가르칠 수 있다는 나의 교만함은 하늘을 찔렀다. 나는 동사 ‘열다’와 ‘닫다’를 충분히 알고 있다고 확신하였다. 어느 날 4교시 난 또 다시 창문을 열어 놓고 수화로 “무엇이냐?”고 그 아이에게 물었다. 그 아이는 “열었습니다.”라고 지문자로 답하였고, 순간 옆에 있던 친구 셋이 모두 맞았다며 박수를 쳤다. 이어서 내가 확인 차 옆의 창문을 다시 열어 놓고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바로 “닫았습니다.”라는 지문자를 썼고, 실망한 친구들이 수화로 “바보”라며 동시에 아이의 머리를 쥐어박으려는 듯 아이의 머리 쪽으로 손을 올렸다. 갑작스런 상황 속에 나는 그 아이들의 손을 가로 막으며 짧은 신에 대한 원망의 기도를 하였다. “오~ 신이시여 해도 해도 너무 하십니다. 어찌하여 이 아이의 머리를 이리도 아둔하게 낳으셨습니까? 청각장애 하나만도 힘든데 머리까지 이리 아둔하게 허락하심 어찌하옵니까?!” 기도 중에 내 눈 앞에 뚜렷하게 보이는 작은 손놀림이 있었다. 아이가 주먹을 쥐고 검지만을 약간 뻗어 검지 끝으로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그건 분명 화살표였다. 그 작은 흔들림이 큰 화살표로 변하여 내 눈 앞으로 성큼 다가오는 순간, 교실 바닥과 천정이 한 바퀴 휘-익 돌았고 난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정신을 차려 비틀거리며 칠판으로 나아가 분필로 오른쪽으로 길게 화살표를 그렸다. 그리고 아이에게 물었다. “너, 창문이 오른쪽으로 가면 ”열다.‘고 왼쪽으로 가면 ’닫다.‘지? 하고 물었다. 아이는 수화로 ”맞다, 맞다, 맞다“를 반복하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아이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비로소 아이와 내가 눈을 마주친 순간이었다. 처음 ’열다‘를 가르칠 때, 제대로 가르쳐 볼 요량으로 직접 창문을 열고 ’열다‘를 가르쳤는데 이 때 마침 창문의 이동 방향이 오른쪽 이었던 것이다. 어찌 내가 동사 ’열다‘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 후 난 필통, 주전자, 서랍, 앞문과 뒷문, 심지어 아이의 상의 단추까지, 교실에서 열 수 있는 모든 것을 열어 두고 칠판에 ’열다‘라는 두 글자를 썼다. 이어서 ’닫아라‘라는 명령어를 썼다. 아이들은 서둘러 모든 것을 닫았다. 아이들의 수화 ’열다‘와 ’닫다‘로 ’열다‘와 ’닫다‘의 의미를 처음으로 느껴본 시간이었다. 가르침과 배움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앎이 이워진 순간이었다.

이러한 경험 후, 난 ‘How’보다 ‘What’을 ‘Why’가르치는가에 더 고민하였다. 그리고 그 ‘Why’에 맞춰서 적합한 무엇을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청각장애학생들에게는 “문자언어를 가르칠 수 있는 과학실험”을, 해사고등학교 학생들에게는 “자존감을 살려줄 수 있는 과학실험”을 개발하였다. 가르치는 이유가 분명해지니 그에 합당한 내용은 금방 찾을 수 있었으며 자연스럽게 재미있게 가르치는 방법은 따라왔다. 이렇게 개발한 실험들은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이 후 일반 고등학교로 옮겨왔을 때도 동기유발이나 동아리 활동 등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과학 교과에 대한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였다. 무엇보다 탐구방법을 가르치는 데는 특효약이 되었다. 이즈음 일본의 환경운동 단체인 AMR(Amenity Meeting Room)이 부산 온천천 탐사를 왔다. 온천천의 문제를 한국, 부산, 동래에 살고 있는 내가 일본, 동경의 AMR 회원으로부터 듣는다는 게 무지 부끄러웠고 자존심도 상했다. 하지만 난 여기서 어메니티 정신을 배웠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이 어메니티 정신과 부합됨을 알았다. 이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선 게 ‘자연과학의 기초상식을 알게 해주는 재미있는 과학실험 개발’이었다. 기초상식도 기초상식이지만 과학의 방법이 얼마나 멋지고 소중하며 필요한지를 느끼게 해주는 실험 개발이었다. 이리 개발한 실험을 “어메니티 과학실험”이라 이름 붙였고, 퇴직 후 지금도 이 일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Ⅱ. 어메니티 과학실험이란?

어메니티(Amenity)는 인간이 느끼는 쾌적하고 안락한 느낌을 말한다. 어메니티 사상은 18세기 영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급격한 산업화로 도시의 환경이 오염되고 노동자들의 주거 환경도 더럽고 인간이 살기에 적합하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 되었을 때, 이러한 환경을 개선하고자 나온 사상이 어메니티 사상이다. 즉 사람이 살기 좋고, 살고 싶은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 어메니티 운동의 출발이다. 오늘날의 어메니티 사상 또한 인간이 살기에 쾌적하고 기분 좋은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기본 뜻을 이어가고 있으며, 여기에 인간이 살기 좋은 환경은 생태계의 모든 생물이 다 같이 살기 좋은 환경이라는 생각이 더해졌다. 결국 어메니티 사상은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러한 어메니티의 눈으로 과학을 바라보고자 하는 것을 감히 ‘어메니티 과학’이라고 이름 지었고, ‘어메니티 과학’의 구체적인 실천 내용이 ‘어메니티 과학실험’이다.

오늘날의 자연 파괴의 책임은 여러 부분에서 과학이라고들 한다. 반성 없는 과학, 인간 중심의 과학이 만들어 낸 비극이 오늘날의 자연파괴라고들 한다. 하지만 과학의 본성은 자연을 사랑하고, 그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알고 서로간의 조화를 이루어 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어메니티 과학은 자연이 비로소 완전한 생명체라 인식하고 자연을 총체적으로 바라보자는 생각을 과학교육 프로그램 속에 담아서 자연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과학에 생명을 싣고자하는 과학이다.

그 첫째가 ‘자연 속으로’이다.

자연 속으로 가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과정이다. 현장학습과 체험학습, 생태기행을 강조한다. 느낌만이 가장 훌륭한 스승이며, 경험의 열매는 관점이기 때문이다.

그 둘째가 이야기 속으로 이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이 자연은 이 순간 싹튼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 눈에 비치는 이 자연의 모습도 전부라고 할 수 없다. 현재의 자연이 있기까지의 역사와 현재의 자연의 모습 뒤에 숨어있을 자연의 본 모습에 대해 앞서 살아 온 선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료를 모으는 과정이다. 과학사 교육을 강조한다.

그 셋째는 실험 속으로 이다.

앞서 관찰, 조사한 내용을 내 손끝에서 조작적인 방법으로 파헤쳐 보는 분석적인 과정이다. 비록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지만 직접 품어보고 만져보는 확인 과정이다.

실험대 위에 올려 진 비커 속의 물은 이미 물의 전체 모습이 아닌 물의 파편에 불과하다. 이 한 조각의 물의 특성만으로도 우리는 물의 특별함에 놀란다. 하물며 생명력 있는 전체로서의 물의 본성은 얼마나 위대할까? 이 위대한 자연이 바로 우리 인류의 본향임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 어메니티 과학의 숨은 의도이기도 하다.

“자연은 우리의 가장 뛰어난 스승이다. 우리는 자연의 법칙을 따라 가려고 해야지, 그것을 정복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 인류가 파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분석적이고 경쟁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종합적이고 조화로운 세계관을 추구해야만 한다.”는 빅터 샤우버거의 생각을 배워 과학교육을 통해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 ‘어메니티 과학’이다. 결국 ‘어메니티 과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연과의 사랑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사랑의 시작은 그 대상에 대한 관심이고, 그 관심의 시작은 내 곁에 그 대상이 있음을 알 때 생겨난다. 이런 생각에서, 어메니티 과학실험은 먼저, 자연의 기본 소재를 챙겨 보았다. 자연의 기본 소재를 크게 물질(입자)과 에너지(場)으로 나누고 물질은 다시 기체 상태의 ‘공기’, 액체 상태의 ‘물’, 고체 상태의 ‘흙’의 3주제로, 에너지는 다시 인간이 발견한 제 1의 힘인 중력을 ‘힘’으로, 제 2의 힘인 ‘전자기’에 ‘소리’, ‘빛’, ‘불’을 더해 5주제로 나누었으며. 여기에 관찰자인 ‘사람’과 이 모든 자연이 공존하는 상태의 상징으로 ‘숲(생명)’이라는 2주제를 더하여 총 10개 주제로 나누었다. 이렇게 챙겨 본 자연의 소재를 가장 먼저 ‘존재를 확인하는 실험’을 개발하였다. 이어서 그 ‘존재의 특성을 아는 실험’을 개발하였고 마지막으로 우리 인간이 그 존재와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존재를 이용하는 실험’을 개발하였다. 정리하면 ‘어메니티 과학실험’은 자연을 공기, 물, 흙, 힘, 전자기, 소리, 빛, 불, 사람, 숲(생명)으로 나누어 ‘자연을 찾아서(확인 실험)’, ‘별난 친구 자연(특성을 아는 실험)’, ‘자연은 내 친구(이용하는 실험)’의 세 영역으로 나누어,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험들로 꾸며 놓은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 마당에 덧붙여 특별 마당으로, 과학에 흥미와 깊이를 더할 욕심으로 <도깨비>마당을, 또 자원의 재활용 등으로 환경문제에 더욱 관심 갖게 하며, 연장 다루기 등을 통하여 신변처리 능력을 기를 의지로 <대장간>마당을 보태었다. 그리고 어메니티 과학실험에서는 특별히 다음을 강조한다.

가. 존재의 확인으로부터 출발한다.
나. ‘A=B이고, B=C이면, A=C이다.’는 논리성을 강조한다.
다. 정성실험에서 정량실험으로 나아간다.
라. 소재는 생활 속에서 찾고, 아이들의 경험을 실험 테이블 위에 올린다.
마. 이완된 집중으로 자연의 순환 고리를 깨닫게 한다.

아울러 어메니티(Amenity) 과학수업은 의문(?)이 느낌(!)으로 바뀌는 수업으로 먼저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을 확인하고, 교사의 발문과 학생의 몸소 체험으로, 이 신념을 수정 보완한 후, 의도적인 새로운 신념을 심는 방식으로 설계한다. 반드시 학생의 신념을 학습의 씨앗으로 삼아야 함을 강조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신념대로 경험하기 때문이다.

<어메니티 과학의 방법>

Ⅲ. 어메니티 과학실험이 있어 행복한 시간들

1. 학교 교육활동 지원

현재까지 개발한 학교 교육활동 지원 프로그램은, 유아교육 현장 방과 후 수업 프로그램으로 ‘놀고-느끼고-생각하고-표현하기’의 주제로 50차시, 중학교 자유학기제 프로그램으로 ‘과학마술 영어로 발표하기’, ‘어메니티 과학실험’, ‘생활 속 화학실험’ 등 각 16주제, 고등학교 창체 프로그램으로 ‘생활 속의 과학실험’ 16주제가 개발 되어있다. 각 프로그램의 특성은 유아교육은 ‘오묶잡끼 붙접불’(오리고, 묶고, 잡고, 끼우고, 붙이고, 접고, 불기) 등 신변처리 능력을 기르고. 무엇보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게 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고, 중학교는 1시간은 주어진 안내서대로 실험을 수행하고, 한 시간은 왜 그런가의 까닭을 토의하는 식으로 꾸며 지도교사는 부담 없이 안전사고에 유의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길을 찾아가게 안내만 하게 하였다. 교과 관련 배경 지식은 아이들의 질문에 대비하여 준비해 두면 좋지만 서둘러 설명할 필요는 없다. 마지막으로 고등학교는 피할 수 없는 입시지도에 적응하게 1시간은 이론, 1시간은 그 이론을 확인하는 실험으로 꾸몄다. 그리고 초, 중, 고 관계없이 ‘어메니티 디지털 캠프’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며 1차 파일럿 실험을 마친 상태이다. 학교 교육활동 지원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모든 프로그램에서 자연의 성질을 알게 하는 목적에 덧붙어 알게 된 자연의 성질을 바탕으로 나만의 자유탐구 활동 과제를 뽑아내게 하는 데 주안점을 둔 것이다.

2. 시민 대상 강의에서

‘아이가 아이를 키우니 저 문제다!’시던 살아생전 시어머님의 넋두리를 듣고 생각했다. 아이가 그저 제 욕심대로 한길만 내달리는 사람이라면 어른은 양 방향의 소통이 가능한 사람이다. 먼저 어른이 어른다워져야 그 본을 보고 자라는 아이가 양방향의 소통을 배워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크고 작은 생활 속 안전사고에 대한 기초과학상식 또한 부족한 어른들에게 자연을 알리고 싶었다. 현재, 각 구청에서 실시하는 ‘좋은 부모 자격증 반’, 산림청에서 실시하는 ‘유아 숲 지도자 양성 과정’, ‘생태 유아 교사’ 등 어른들이 모이는 곳에서 강의 제안을 받으면 무조건 달려간다. 가서는, 이게 공기야! 이게 물이야! 이게 힘이란 말이다! “자연을 알자! 적어도 이 정도는” 하며 거의 울분을 토하듯 열강을 한다. 일방적으로 쏘아 붙이는 정도래도 과언은 아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모두가 좋아하였다. 주로 배움이 뭔지? ‘마음-치유의 과학’, ‘사고력-성장의 과학’이라는 주제 강의를 통해 ‘느낌이 가장 훌륭한 스승이다.’를 말하고, 자 이제부터 ‘느낌을 주는 과학을 만나보자!’라며 무릎 위에서 어메니티 과학실험을 실시한다. 현재까지의 경험으로는 이러한 대중 강의가 정말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수요가 없을 땐 찾아가서라도.

3. 교육 봉사활동의 소재로

요즘 들어 대학마다 해외 봉사활동을 많이 떠난다. 교육은 ‘소통’인데 언어도 원활하지 않은 활동에 너무나 적합한 것이 ‘어메니티 과학실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베트남, 네팔, 남아공, 탄자니아, 동티모르 등 현재까지 여러 나라에 걸쳐 많은 안내를 하였다. 학생들은 과학이 만국공통어란 생각으로 원활한 봉사활동을 마치고 와서는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일부 나라에서는 어메니티 과학실험을 자기 나라 말로 번역해 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베트남과 동티모르는 현재 준비 중이기도 하다. 필자가 소속된 ‘어메니티 과학교육 연구회’에서는 매년 동티모르 아이들과 어메니티 과학캠프(Ko-TiAC)를 열고 있다.

4. 멈출 수 없는 어메니티과학실험의 개발

가르침과 배움은 힘의 상호작용이라 생각한다. 가르침의 반작용이 배움이요 배움의 반작용이 가르침이다. 나 홀로의 힘이 없듯이 가르침만 있을 수 없고 배움만 있을 수 없다. 가르침과 배움이 동시에 존재할 때 ‘앎’이 이뤄진다. 가르침도 배움도 나로부터 작용한다. 그래서인지 현직에 있었을 때와 현직을 떠났을 때의 내 모습은 사뭇 다르다. 아이들을 대할 때도 현직에서라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아이들의 언행이, ‘아하! 저럴 수도 있겠구나!’며 이해되었다. 비로소 아이를 관찰 대상에 넣고 나를 관찰 대상으로 내어 놓는 여유가 생겼다. 뿐만 아니라 현직에 있을 땐 개발한 어메니티 과학실험이 어딘가가 허술하고 미흡해 보였으며 무엇보다 없어 보였다. 그래서 항상 뭔가를 덧 붙여 고급지게 해야겠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현직을 벗어난 지금 어메니티 과학실험을 바라보는 내 느낌은 많이 다르다. 하나하나가 소중한 내 자식 같다. 실험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제가 이 역할까지는 못하겠어요.”라든지, “제가 저 역할까지 할 수 있는데”라든지. 실험을 수행할 때는 더 많이 재잘거리고,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어도 말을 걸어온다. 때로는 진열대에 놓인 지네들끼리의 수다가 왁자지껄하다.

부끄럽게도 교사 생활을 벗어난 지금에서야 가르칠 아이와 가르칠 내용이 탐구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나를 탐구 대상으로 투척하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요즈음 나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바로 이러한 실험을 재구성하며 새로운 걸 탄생시키는 작업과정이다. 최근에 개발한 ‘숯 전지로 벤함의 원반 탐구’는 실제 실험을 수행해 본 사람만이 필자가 왜 이 실험에 자부심을 가지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여기 소개한다. 아울러 원고를 쓰는 동안 개발한 ‘종이컵 요요로 벤함의 원반 탐구’를 현장에서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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